읽을 맛이 나는 글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내 어린 시절 아버지는 주말이면 종종 나와 내 동생을 데리고 시내에 있는 단관 극장에서 영화를 보여주시곤 했다. 주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었는데 그 중 아직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영화가 하나 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3년에 개봉한 '쥬라기 공원 1'이다. 컴퓨터 그래픽이란 용어조차 생소하던 나에게 스크린 속에 펼쳐진 드넓은 초원을 달리는 살아 있는 공룡 무리를 보는 경험은 충격 그 자체였다(같은 해 개봉한 '영구와 공룡 쮸쮸'라는 국내 영화의 장면과 비교해 보면 그 충격이 공감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극장을 나오던 내 가슴 속에는 한 가지 강렬한 바람이 생겼다.
"나도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난 성대를 고운 사포로 간듯한 발성을 하는 가수들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카더가든과 김필의 노래를 즐겨 듣고 있다. 그전까지 내가 가장 좋아했던 가수는 박효신이었다. 데뷔 초창기 유명했던 소위 소몰이 창법도 매력적이지만 그를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계기는 2014년도에 발매한 '야생화'라는 곡 때문이었다.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4년이라는 시간의 공백기를 가진 그가 오랜만에 내놓은 자작곡이었다. 그의 가수 인생의 굴곡을 담은 가사가 주는 감동 외에도 너무나 편안하고 담백해진 그의 목소리에 더 감동하였다. '야생화'를 처음 들었던 그날 클라이맥스에서 소름을 느끼며 내 가슴 속에는 또 하나의 작은 바람이 생겼다.
"나도 저렇게 노래 부르고 싶다."
얼마 전 우연히 대학 동기가 쓴 수필을 하나 읽게 되었다. '생존 배낭을 왜 쌀까?'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오래 알고 지낸 누군가의 생각을 다듬어진 글로 접한다는 건 꽤 신선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의외로 그 친구가 글을 맛깔나게 쓴다는 사실에 짐짓 놀랐다. 읽을 맛이 나는 글을 접할 때마다 내 가슴 속에 스멀스멀 자라나는 바람이 있었다(짐작하겠지만….)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그런데 그런 나의 바람을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이 그 글이 어떤 글쓰기 모임의 활동을 통해 쓰인 것이라며 해당 모임을 추천하는 친구의 글을 곧이어 발견하게 되었다. 그 모임은 바로 '오마카세 글쓰기 클럽'(이하 오글클)이었고 무려 돈을 내고 글을 쓰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일단 오마카세라는 네이밍이 흥미로웠다. 오마카세 일식당은 비싸서 평상시에는 좀처럼 가기 망설여지는 곳이지만 막상 가보면 비용의 값어치를 충분히 경험하게 하는 곳들이다. 마침 부업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 보수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통장에 오마카세 식당에 한번 갈 여유는 있었던 터라 과감히 오글클에 참가를 결정했다.
내 인생에는 10년을 주기로 큰 사건들이 있었다. 10살의 나는 앞서 언급한 '쥬라기 공원 1'을 보았고 영화인이 되고 싶다는 오랜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살의 나는 시각디자인학과에 입학했고 정확히 10년이 지나 30살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 이쯤 되자, 인생 10년 주기설은 나에게는 미신 같은 것이 되어버렸고, 올해 딱 40살이 된 나는 과연 어떤 사건을 내 인생의 큰 사건으로 기억하게 될지 무척 기대하는 중이다. 이미 상반기에 꽤 큰 사건이 하나 있긴 했다. 딸아이가 국제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아내와 딸이 말레이시아로 떠난 것이다. 그런데도 왠지 이번에 시작한 이 오글클 이라는 모임의 활동이 내 인생의 큰 사건일 것만 같은 기대감이 든다(이 글이 바로 오글클 모임에서 처음으로 쓰고 있는 글이기도 하다.)
그동안 내가 블로그나 SNS를 제대로 운영하지 않았던 것은 누가 읽게 될지 모르는 열린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를 향해 글을 쓴다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내 글을 평가받는 것이 두려웠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면서 사회 초년생 시절 처음으로 큰 행사에서 중요한 발표를 해야 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가 익숙지 않다면 청중 무리 위에 큰 삼각형을 그리고 그 꼭짓점에 있는 3명을 특정해서 그 3명만 번갈아 바라보며 발표하라는 팁을 어딘가에서 읽었다. 그리고 그 팁은 꽤 유용했다.
이번 오글클은 나를 제외한 8명의 참가자 중 한 명이 내 마니또가 되어 내 글을 성의껏 읽고 피드백을 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마니또 한 명을 수신인으로, 나머지 7명은 참조로 해서 이메일을 쓴다고 생각하고 글을 써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글쓰기가 한결 편안해 짐을 느꼈다. 이 글을 읽고 있을 앞으로 5주간 내 글을 피드백해 주실 마니또에게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의 지향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내 글이 지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화할 때에는 듣는 이의 표정을 살필 수 있어서 내 이야기에 즉각적인 변형이 가능하다. 상대방이 집중하고 흥미를 보이는 부분에서는 살을 붙여 이야기를 풍부하게 하고, 지루해하는 기미가 보이면 과감하게 생략한다. 그러나 글은 오롯이 나의 호흡에 따라 쓰이고 일방적으로 전달된다. 그래서 내 글이 어느 부분은 재미있었고 지루했는지 알 수 있다면 좋겠다.
어디서 본 듯한 뻔한 내용의 글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미 세상에는 너무 많은 책과 글이 있고 좋은 글만 찾아 읽어도 다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기시감이 드는 글은 쓰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내용을 내 생각이라고 착각하고 내뱉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시간이 지나 그것이 다른 사람의 발언이었던 것이 기억나면 수치심을 느낀다. 내 글에서 그런 수치심이 느껴지지 않기를 바란다.
다음 글이 기대되었으면 좋겠다. 만남이 즐거운 사람이 있다. 대화하면 마음이 편하고 종종 신선한 충격을 주는 사람이다. 헤어짐이 아쉽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게 된다. 반면 내 관심 밖의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하거나 말투가 거슬리는 사람도 있다. 만남이 괴롭고 다음번엔 피하게 된다. 내 글이 부디 다음 글을 기대하게 만드는 글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글을 읽은 누군가가 다음과 같은 바람을 가질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