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를 한 번씩만 해도 괜찮아
이소룡은 한 가지를 100번 한 사람을 무서워했다지만
내가 중학교 2학년일 때 학교에서 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아이큐 검사를 한 적이 있다. 검사 결과는 당사자에게만 통보해 주었음에도 우리는 서로의 아이큐를 공공연하게 알게 되었다. 학급 번호조차 키 순서대로 줄 세우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가 서로의 아이큐 점수를 궁금해하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그 중 단연코 화제가 되었던 것은 전교 1등과 2등의 아이큐 점수 차이였다.
2학년 중 전교 1등을 하던 친구는 유명 브랜드의 힙합 스타일을 즐겨 입던 소위 인싸였다. 친구들과 두루 잘 어울리고 놀기 좋아해서 수업 시간을 제외하면 책상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수업 시간조차 엎드려서 자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런데 시험만 쳤다 하면 매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아 의아함과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에 반해 전교 2등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도 책상에 앉아 예습, 복습을 하는 말 그대로 공붓벌레였다. 그러나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1등은 하지 못했다.
전교 1등의 아이큐 점수가 140이 넘는다는 소문이 반에서 반으로 퍼졌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1등을 놓치지 않았던 그의 비밀이 풀린 것만 같아서 수긍이 갔다. 그런데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전교 2등의 아이큐 점수였다. 그 친구의 아이큐는 평균 점수인 100에도 못 미치는 90이었다. 아이큐가 낮아도 열심히 공부하면 전교 2등이 될 수 있다는 인간 승리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나는 평범한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천재는 이길 수 없다는 우주의 진리를 본 것 같아서 서글펐다. 이때의 사건은 나에게 노력이 가진 힘을 믿게 해줌과 동시에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음도 깨닫게 해주었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서울대 출신 패널들이 나와 '공부가 재능인지 노력인지'라는 주제로 토론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난 여기서 '김진짜'라는 패널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음악! 재능입니까? (패널들: 재능이죠.) 그림. (패널들: 재능이죠.) 근데 왜 공부는 재능이냐 노력이냐로 싸우는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똑같다고 보거든요? 우리나라가 엄청나게 학업지상주의, 학벌지상주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다 어릴때 공부를 시키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아 공부도 재능입니다!' 라고 부모님한테 못박기가 너무 미안한거야.
- 김진짜
나는 아이큐 사건을 경험하고 공부는 재능일 것이라고 늘 생각해 왔었다. 그랬기에 김진짜의 주장이 마치 내 생각을 뒷받침해 주는 것 같아 반가웠다. 그런데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관점을 얘기하는 패널이 있었다.
노력도 재능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 '너 10시간 공부하고 20시간 공부하고 노력하면 되지, 왜 재능 타령해'라고 하는데. 20시간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공부할 수 있는 것도 재능의 영역일 수 있다.
- 서준석
그제야 나는 아주 오랜만에 전교 2등을 떠올렸다. 그 친구는 독보적으로 노력을 할 수 있는 재능을 타고났기에 공부를 잘했던 것일 수 있겠구나. 그래, 노력이 재능이라면 노력을 강요할 수 있는가?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의구심을 해결할 질문을 찾은 느낌이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조차 꾸준히 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나는 영화와 드라마, 게임을 좋아한다. 극장에 자주 가는 편이고 유명한 게임은 거의 다 플레이 해보았다. 그러나 나는 한번 본 영화는 절대 다시 보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 밤을 새워 드라마 시즌을 전부 봤다거나 하루 종일 게임을 해서 엔딩을 보았다는 얘기를 들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는 아무리 재미있는 드라마도 한 번에 3편 이상은 못 보고 게임도 2시간 이상을 할 수가 없다.
게다가 나는 일 처리를 몰아서 하는 편이다. 아직도 아내가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일이 있다. 우리의 결혼식 날 식장에 틀어놓을 영상을 업체에 맡기기 싫었던 나는 직접 영상을 만들겠노라 약속했다. 그러나 미루고 미루다가 결혼식 전날이 되어서야 영상 편집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아내는 진저리를 쳤다. 이후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될 때마다 아내는 그날의 일을 다시 소환하며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어머니의 말을 들어보면 나는 어려서부터 게을렀고 뭐든지 금세 실증을 냈다고 한다. 난 무엇을 반복해서 꾸준히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1시간 정도 하면 끝날 단순한 일감이 주어지면 바로 시작해서 1시간 안에 끝내는 게 아니라, 자동화할 수 있는 부분이 없을까 고민하고 알아보는데 2시간 이상을 쓴다. 이러한 성향이 더욱 강화되었다고 생각하는 사건이 하나 있다. 대학교 때 평면조형이라는 실기 수업을 들었는데 평면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입체물을 만드는 수업이었다. 어느 날 교수님은 아래의 관동별곡 한 구절을 우리에게 읊어주셨다.
저녁 햇빛이 비껴드는 현산의 철쭉꽃을 이어 밟아,
나를 태운 우개지륜이 경포호로 내려가니,
십 리나 뻗어 있는 얼음과 같고, 흰 비단을 다리고 다시 다린 것 같은
큰 소나무 숲으로 둘러싼 속에 한껏 펼쳐져 있는데,
물결도 무척이나 잔잔하여 모래알까지도 헤아릴 만 하구나.
한 척의 배를 띄운 뒤, 호수를 건너 정자 위에 올라가니,
강문교 너머에 동해가 보이는구나!
- 관동별곡 본사2-5 중에서 (현대어 버전)
이 장면을 입체물로 표현해 보라고 하셨다. 우리가 좀처럼 감을 잡지 못하자, 교수님은 예시 작품 사진을 몇 개 보여주셨다. 컴퓨터 메인보드 기판 위에 메모리카드, CPU 등 부품들을 붙여서 숲과 호수를 표현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담배 한 개비 한 개비를 각기 다른 길이로 피워서 빼곡하게 이어 붙여 담배로만 풍경을 표현한 작품도 있었다. 그제야 우리는 교수님의 의도를 이해했고 어떤 특별한 재료를 선택할지 고민했다. 일주일 뒤인 다음 수업 시간까지 완성해야 했기에 부지런한 학생들은 그날 저녁부터 제작에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며칠이 지나도록 좀처럼 작업을 시작하지 못했다. 어떤 재료로 만들어도 비슷한 모양의 입체 풍경이 나올 것 같아서 작업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윽고 수업 전날이 되었다. 밤을 새워도 내일까지 완성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었다.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내 머릿속에 한가지 번뜩이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길로 인사동으로 갔다. 그리고 짚신 한 켤레를 집어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화방에 들러 하드보드지와 투명 실리콘, 그리고 꽃무늬 한지를 구매했다. 꽃무늬 한지로 만든 새끼를 짚신 옆면과 바닥에 끼워넣었다. 그리고 짚신을 하드보드지 위에 삐뚤게 올린 뒤 투명 실리콘으로 붙였다. 그리고 주변에 모래를 뿌렸다. 그게 끝이었다(사진을 찍어둔 게 없어 최대한 기억을 살려 그림을 그려보았다.)

다음날 수업에 이 짚신 작품을 가져간 나는 이렇게 발표했다.
저는 관동별곡 가사에 묘사된 그날 정철이 신었을 짚신을 표현해 보았습니다. 현산의 철쭉꽃을 이어 밟아 짚신에는 꽃잎이 으깨어져 물이 들었습니다. 경포호에 도착한 정철은 모래알까지 헤아릴 만큼 맑은 물을 보자 발을 담그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그래서 짚신을 허겁지겁 벗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정철은 호숫물에 발을 담그고 서 있습니다. 저는 정철이 벗어놓은 짚신을 만들었습니다.
나는 다행히도 이 수업에서 A+을 받았다. 그러나 그때 교수님이 과제의 원래 의도에서 벗어난 나의 작품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나는 그저 꼼수를 부리는 게으른 얌생이 정도로 평가받았을지 모른다(분명 당시에 내 발표를 듣고 있던 학생들 중에는 그렇게 생각한 이도 있었으리라...) 이때의 경험이 내가 어떤 문제를 비틀어서 바라보고 풀어내려고 하는 성향을 강화한 듯하다. 그리고 최대한 머릿속에서 생각을 많이 하고 손을 덜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을 추구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개인적인 경험을 들어 꾸준함과 성실함이 미련하다거나 하찮은 가치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분명 꾸준히 노력했더니 대단한 성과를 이뤘다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사람마다 가진 재능이 다르고 노력을 할 수 있는 능력에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에 조금씩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일반화하지 말자. 그렇기에 어떤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힘든 사람에게조차 꾸준함의 힘을 강조하고 부추기는 건 지양하자는 것이다(여보, 그러니까 이제 결혼식 영상 얘기는 그만….)
나는 이러한 생각을 나의 열 살배기 딸아이를 키울 때도 투영하는 편이다. 지금 아이는 엄마와 말레이시아에 있는데 만나러 갈 때마다 한글로 된 책을 몇 권씩 사 간다. 그런데 내가 고른 책 중에는 아이가 흥미를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다. 언젠가 내가 어린이 삼국지를 한 권 사 갔는데 아이는 조금 읽더니 재미없다며 책을 덮어버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내가 유명한 좋은 책이니 재미가 없어도 읽어보는 노력을 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좋은 책이란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것이니 재미가 없으면 읽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를 닮아 뭐든지 쉽게 싫증을 내는 아이에게 꾸준함의 습관을 길러주려던 아내는 나를 향해 눈을 흘겼다. 아차 싶었다. 어떻게 아내와 아이에게 좋은 책에 대한 내 의견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나는 다음번에 다시 아내와 아이를 만나러 갈 때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어린 왕자' 책 2권을 사 갔다. 그리고 아이에게 2개의 어린 왕자 책 중에 무슨 출판사의 버전이 더 재미있는지 골라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어린 왕자는 좋은 책이지만 출판사마다 그림이나 글의 표현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사람마다 제각기 궁합이 맞는 버전의 책이 다를 것이다. 앞으로 아이가 재밌어하는 출판사의 책을 사 올 테니 억지로 읽으라고 하지 말자. 다행히 아내는 수긍했다.
나는 내 아이가 그저 무턱대고 노력하거나 꾸준함을 추구하며 살기 바라지 않는다. 10년 동안 키워보니 나를 닮아 그런 꾸준함의 재능은 가지지 않은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무엇을 꾸준히 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려 하지도 않았으면 한다. 한 가지를 꾸준히 실천해서 대단한 성취를 이룬 사람을 존중하되 부러워하거나 닮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딸아 100가지를 한 번씩만 해도 괜찮아. 100가지에 관심을 가지고 시도해 보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