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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bad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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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에서 일행이 공을 잘 치면 '나이스샷'이라고 외쳐주는 것이 매너이다. 그러나 골프 초보자인 나는 '낫배드'라는 말을 더 많이 듣는다. 낫배드는 영어 Not bad 의미 그대로 '나쁘지 않은 샷'이라는 뜻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낫배드라는 말이 싫었다. 위로와 격려의 의미로 낫배드를 외치는 일행들이 마치 나의 실력을 비아냥대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낫배드라는 말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게 된 건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유명 프로골퍼의 조언 때문이었다.

많은 분이 나이스샷을 때리려고 해요. 나이스샷은 엄청 어려운 거예요. 중앙에 맞고 쫙 멋있게 가는 볼은 18홀에 한두 개 정도 나오는 거예요. 나이스샷을 때리는 것보다 미스했을때 낫배드 때리면 되거든요. 골프를 생각을 바꾸세요.

- 임진한 프로

그제야 내가 지나치게 나이스샷에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잘 치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힘이 과하게 들어가고 자세도 흐트러진다. 그러면 미스샷 중에서 최악이라 불리는 '생크'가 날 확률이 높아진다. 생크는 공이 내가 의도한 곳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공이 OB 구역(골프장 경계 밖)이나 해저드 구역(연못이나 풀숲)으로 가기 십상이다. 그러나 잘 치겠다는 집착을 버리고 실수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차분하게 스윙하면 설령 미스샷을 치더라도 낫배드가 되는 것이다. 간단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나의 골프 스코어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인생도 이와 같다. 살면서 나이스샷이라고 외칠만한 순간들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 원하던 대학에 합격한 사실을 확인한 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한 날 정도가 내 인생 나이스샷의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오히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이 많았다. 운전 면허 기능 시험을 3번이나 낙방했고, 분양가가 싸다고 덜컥 사버린 생에 첫 주택 조합아파트는 아직도 건설사와 분쟁 중이다. 그럴 때일수록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든 나이스샷으로 만회해보겠다는 일념으로 욕심을 내면 인생에서도 생크를 경험하게 된다.

나는 지나간 일은 후회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있다. 그러나 아직도 내 마음속에서 온전히 털어내지 못한 내 인생 최악의 생크가 있다. 나는 대학 선배의 소개로 IT 벤처기업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포항공대 출신 엘리트들이 만든 개발업체였다. 구성원들의 실력이 뛰어나고 제품도 기술력을 인정받아 많은 투자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초창기 멤버였던 나 또한 회사의 성장과 함께 빠른 시간에 성장했다. 이때 좋은 회사를 판단하는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사람, 일, 돈 이 세 가지 중 두 가지만 만족하면 다닐만한 좋은 회사라고 말이다. 배울 점이 많은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했고 항상 새로운 IT 트렌드를 익히며 하는 일도 재밌었다. 게다가 고속 승진을 하며 웬만한 대기업 수준의 연봉도 받기 시작했다. 사람, 일, 돈 모두 만족스러운 시절이었다.

그러나 대표가 모바일 게임 사업부를 신설하면서 상황이 조금씩 안 좋아 지기 시작했다. 처음 출시한 게임의 시장 반응은 꽤 괜찮았다. 그러나 이후 출시하는 게임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회사의 재정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게임 개발에는 큰 비용이 들어가기에 기존 사업에서 벌어들이는 수익과 투자금을 모두 쏟아부어야 했다. 기존 사업부와 게임 사업부 간의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다. 돈을 버는 팀과 돈을 쓰는 팀이 따로 있냐는 볼멘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결국 기존 사업부에 있던 초창기 멤버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일 먼저 사람을 잃었다. 하지만 아직 일과 돈, 두 가지에 만족하고 있었기에 계속 다녔다.

핵심 개발자들이 회사를 떠나자 제품의 퀄리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고객사들의 불만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추가 계약의 불발로 이어졌다. 결국 적은 금액의 단순 하청 계약이라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일이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이때라도 회사를 그만두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모바일 게임 하나만 터지면 주식시장에 상장할 수 있을 거란 대표의 말을 믿었다. 이미 오래전에 스톡옵션도 받은 상태여서 상장만 하면 큰 돈을 벌수 있을것 같았다.

한편 나는 기존 사업부의 이사였지만 대표에게 직언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조금의 책임감도 느끼고 있었다. 급기야 경영팀장이 사직하면서 내가 그 역할까지 겸임해야했다. 그제서야 회사의 재정 상태를 낱낱이 알수 있었다. 회사 통장에는 직원들의 두 달 치 급여조차 없었다. 급여 지급이 조금씩 미뤄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급여를 지급할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이때 나는 최악의 결정을 하게 된다. 대표의 제안으로 개인 돈 5천만 원을 출자해 회사의 주식을 인수하고 그 돈으로 직원들의 급여를 준 것이다. 사람, 일, 돈 모두 의미 없어진 망해가는 회사를 그만두지는 못할망정 내 돈을 더 투자하는 결정을 한 것이다. 회사가 상장만 하면 한방에 회복할 수 있다는 욕심 때문에.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침이었다. 당시 회사 사무실이 뱅뱅사거리에 있었고 양재역에서 내려 500미터가량 걸어가야 했다. 평상시엔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그날은 30분이나 걸렸다. 그렇게 오래 걸렸던 이유는 가는 길에 있는 건물 중 옥상이 열려있는 곳을 찾으려는 마음 때문이었다.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방법 밖에 없다는 충동이 일었다. 사무실 건물 앞에 도착했지만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두려웠고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은 죽을 만큼 싫었다. 망설임 없이 뒤돌아 서서 다시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스마트폰을 끈 채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어서 빨리 이곳에서 멀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가판대에 꽂혀있는 전국의 홍보 책자를 훑어보았고 순천 송광사의 템플스테이 안내문을 발견했다. 곧바로 순천행 버스를 잡아타고 도망치듯 떠났다.

순천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다시 산길을 한참 걸어 송광사에 도착한 것은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린 한밤중이었다. 컴컴한 절 내에 유일하게 켜져 있는 불빛을 따라 어느 방문 앞에 섰다. 인기척을 하자 절에서 일하시는 듯한 남자 한 분이 방문을 열며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며칠 여기서 지낼 수 있을까요?"

"템플스테이 기간이 아니긴 한데... 연락을 주셨었나요?"

아니라고 답하니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알겠다며 자기를 따라오라 하셨다. 맞은편 건물의 작은 방 하나로 안내하고 이불을 내어주셨다. 내일 아침에 스님께 말씀드릴 테니 편하게 쉬라고 하셨다. 오랫동안의 야근과 스트레스로 심신이 지쳐있었던 나는 쓰러져 이불 속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정오가 되어서야 겨우 이불 밖으로 나왔다. 스님을 뵙고 허락을 받은 나는 그렇게 계획에 없던 템플스테이를 시작했다. 종교가 없어서 공양을 드릴 줄 몰랐다. 그래서 법당에는 들어가 보지 않았다. 개울가에 앉아 가만히 물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절밥을 먹으면 소화를 시킬 겸 산길을 걸었다. 자연 속에서의 모든 것은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하루는 빠르게 흘러갔다. 산속이라 어둠이 빨리 찾아왔다. 밤이 되면 작은 방에 홀로 앉아 잠이 들때까지 책을 읽었다. 속세의 많은 고민과 문젯거리가 단절된 그 공간의 시간이 영영 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절에서 기거한 지 사흘째 되던 날에도 개울가에 앉아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연세가 아주 많아 보이시는 노스님 한 분이 지팡이를 짚고 내 곁을 지나가며 말씀하셨다.

"지낼만한가요?"

스님을 뵈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라 엉거주춤 일어서며 꾸벅 묵례하고 네라고 답했다. 그러자 노스님은 싱긋 웃으시더니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가던 길을 가셨다. 그러고 다시 앉아 개울물을 바라보는데 문득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때 이미 나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상태였고 돌이 되지 않은 아이도 하나 있었다. 아이야 어려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지만 아내는 사흘째 연락이 되지 않는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 것인가. 극심한 스트레스와 극단적인 생각에 휩싸여 있던 내가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내 삶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그 길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짐을 챙겨 인사를 드리고 절을 나왔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아내가 어떻게 나올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이혼하자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저지른 상황이니 어떠한 반응도 감내하자는 마음으로 잠금장치를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식탁 의자에 홀로 앉아있던 아내가 현관이 열리는 소리에 뒤돌아 보고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내는 이내 피식 웃더니 말했다.

"빨리 왔네? 금요일쯤 들어올 줄 알았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라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서 얼어 있었다. 아내는 다 큰 어른이 가출했으면 어디서 바람이나 쐬다 오겠지 싶었단다. 그리고 어서 경찰서에 전화해서 실종신고부터 해제하라 했다. 내가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걱정 많은 고향 친구가 한 거라며 그 친구에게도 연락하라 했다. 그렇게 사흘 만에 스마트폰을 켰고 나의 안위를 걱정하며 와있는 수많은 부재중 연락과 문자에 일일이 답했다. 그러고 아내와 마주 앉았다. 아내는 내일 당장 정신과에 가라 했다. 가서 상담받고 필요하면 약도 처방받으라 했다. 그리고 무엇 때문의 그리 힘들었는지 생각해 보고 그 이유가 회사라면 사직하라 했다. 그러고도 내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면 이혼하자 했다. 그게 내가 살 길이라고 했다. 아내의 말에 그저 알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아내의 말 중 하나밖에 지키지 못했다. 다음날 당장 근처의 정신과를 찾아가 상담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다. 그러나 회사를 제 발로 나올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니던 회사가 파산절차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약 때문이었는지 회사가 망해서 더 이상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어서였는지 나는 상태가 빠르게 좋아졌다. 그러나 7년간 다닌 회사의 퇴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고 투자했던 돈 5천만 원을 합쳐 1억 원이 넘는 손해를 보았다. 그럼에도 돈은 다시 벌면 된다며 나를 위로해 주고 이해해 준 아내에게 평생 갚지 못할 고마움과 미안함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내 인생 가장 최악의 생크였던 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너무나 큰 비용으로 인생의 생크를 경험한 나는 이제 나이스샷보다는 낫배드를 추구하며 살고 있다. 인생의 많은 순간들은 내가 아무리 계획하고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인생은 원래 그렇다고 받아들이고 실수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접촉 사고가 났지만 사람이 크게 다치지 않았으니 낫배드. 자격증 시험에 떨어졌지만 조금만 더 준비하면 다음엔 붙을 것 같으니 낫배드. 기대했던 영화가 재미없었지만 어니언 팝콘은 맛있었으니 낫배드. 낫배드 순간이 많을수록 인생은 살만하다.

이 글이 만족스럽진 않지만, 무사히 마무리했으니 낫배드.

S

영화 같은 에피소드네요.